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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들에 대한 선언과 강령의 몇 가지 요소들

국제공산주의동맹

(제4 인터내셔널주의자)


ICL 원칙선언 대한 서문

2011년 봄

2010년 후반기에 개최되었던 국제공산주의동맹(제4인터내셔널주의자)의 제6차 대회는 1998년 제3차 ICL 대회에서 채택되었던 ICL의 “강령의 원칙들과 몇 가지 요소들에 대한 선언”에 대한 몇 가지 수정들을 할 것을 투표로 결정했다. 선언에 대한 개정판보다는 서문의 형식으로 이것들을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 우리는 혁명적 노동자 운동의 역사적인 문서들에 대한 필수적인 확장들이나 추가들을 선언함에 있어서 우리의 맑스주의자 선배들의 실천을 따른다.

수정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2007년 제5차 ICL 대회에서 채택되었던 자본주의 국가에서 집행 직위들에 후보로 나서는 것에 대한 원칙적인 반대의 입장이다. 이것은 원칙선언의 11번째 항목에서 표현되고 있는 입장의 논리적 연장이다. 즉, “개량주의 노동자 정당들(레닌의 정의에 의하면 ‘부르주아지 노동자 정당들’)에 의해 구성되는 의회 정부들은 자본주의 지배를 관리하는 자본가 정부들이다”라는 것이다. 개량과 혁명 사이의 근본적인 경계선은 부르주아지 국가에 대한 태도이다. 즉 개량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서 기존의 국가 기구를 잡고 그것을 관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과는 반대로, 레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국가 기구는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통하여 분쇄되어야만 한다고 이해한다. 맑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지위들을 혁명적 선전을 위한 연단으로서 활용하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부르주아지 의회 기구들에서 반대파들로서 후보로 나서고 복무할 수 있지만, 집행 직위들에 후보로 나서는 것의 문제는 - 2007년 이전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미리 당선되더라도 그러한 직위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때에 조차도 - 그것이 국가에 대한 널리 퍼져있는, 그리고 개량주의적인 개념들에 정당성을 부여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서 “자본주의 국가의 집행기관들을 타도하라! 맑스주의 원칙들과 선거 전술들”(스파르타시스트 [영어판] 61호, 2009년 봄)은 그것이 1920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CI) 제2차 대회에서 의회주의의 문제에 대한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토론으로부터 부분적으로 제기되었던 실천인 우리의 레닌주의와 트로츠키주의 선배들의 실천과 어떻게 다른가를 지적하는 가운데 이러한 이해의 역사상의 발전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제5차 ICL 대회의 문서가 선언했던 것처럼, “집행기관 직위에 입후보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채택함에 있어서, 우리는 제3 인터내셔널의 사실상의 창립문서들인 레닌의 국가와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과 배교자 카우츠키에 대한 추론으로서 무엇이 보여야 하는지를 인지하고 있으며 성문화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첫 4개 대회의 이론적이고 강령적인 작업들에 대한 완수를 계속해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선언에 대한 둘째 추가 사항은 중국, 북한, 베트남, 그리고 쿠바와 함께 현존하고 있는 관료적으로 기형화된 노동자국가들 중의 하나에 라오스를 포함시킨 것이다. 베트남 전쟁 동안에, 우리는 모든 종류의 소부르주아지적 평화주의, 계급협조, 그리고 스탈린주의 민족주의의 형태들에 맞서 다음과 같은 구호를 제기했다: “인도차이나 전체가 공산주의로 가야만 한다!” 1975년 4월 30일의 (북)베트남 민주공화국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세력들에 의한 사이공 장악은 미국 제국주의와 미국의 남베트남 부르주아지/지주 꼭두각시 정권에 맞서는 베트남 혁명의 승리를 의미했다. 수주 후에 스탈린주의자에 의에 지도되던 농민에 기반을 둔 패테트 라오 게릴라 봉기세력들이 라오에서 권력을 장악했을 때, 우리는 스파르타시스트 동맹/미국의 청년신문에 “자신의 압도적으로 봉건적이고 심지어 전(前)봉건적인 부족적 생산관계를 가진,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수립된 라오스 국가는 이웃해 있으면서, 보다 더 발전된 베트남과 중국의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들 쪽으로 기울고, 두 국가들의 사회적 성격을 취하는 경향을 보이게 될 것이다”라고 썼다(청년 스파르타쿠스 33호, 1975년 6월). 하지만, 그 이후 여러 해 동안 우리는 라오스가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이며 인도차이나 혁명의 승리 이래로 노동자 국가였다는 것에 대한 이해를 성문화하지 않았다. 라오스 공산주의자들은 항상 베트남 공산주의자들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왔다. 일단 권력을 잡자 라오스 스탈린주의자들은 상대적으로 보다 강력하고 경제적으로 선진화된 베트남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의 협력과 영향력 아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적 소유 형식들에 기초한 정권을 수립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10월 혁명의 조국인 소련에서의 자본주의적 반혁명에 맞서는 투쟁의 중심적 중요성을 올바르게 강조하면서, 선언의 3번째 항목은 1989-90년 “독일의 혁명적 재통일을 위한 우리의 적극적인 개입”에 관하여 적고 있다. 결과적으로 승리했던 서독과의 자본주의적 재통일 세력에 맞선 우리의 프롤레타리아트 정치혁명을 위한 투쟁은 우리 경향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지속적이었던 개입을 의미했다. 1992년 ICL 제2차 대회의 문서(스파르타시스트 [영어판] 47-48호, 1992-93년 겨울)에서 DDR(동독) 개입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서 우리가 지적했듯이, “세력의 불균형에 처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정치혁명이라는 ICL의 강령과 굴종과 반혁명이라는 스탈린주의 강령 사이의 투쟁이 있었다.”

우리는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원칙들에 대한 선언에 있는 몇 가지 인상주의적 선언들에 대한 과거의 명문화된 수정들을 요약한다. 3번째 항목의 “중국에서의 ‘시장 개혁’ 반혁명”에 대한 언급은 그러한 정책의 도입과 자본주의 반혁명의 임박함을 뒤섞는다. 똑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중국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국가산업에 대한 전면적인 파괴를 원하며, 이러한 파괴는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의 계획 경제의 남은 부분들의 해체를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자본주의적 소유의 대규모 유입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경제의 산업 및 금융의 핵심이 집산화된 국가 소유 재산에 기초하고 있는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로 남아 있다. 사회화된 소유의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부서지기 쉬운 기생적 계층인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위로부터의 냉정하고도 점진적인 자본주의의 복구를 실행할 수 없다. 하지만, 관료집단은 조만간 자본주의 복구나 프롤레타리아트 정치혁명에 대한 양자택일을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부서지게 될 것이다.

선언(7번째 항목에서)은 또한 소비에트 이후 시대에서 중도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생디칼리스트 경향들의 중대성을 과장한다. 1934년 트로츠키가 “중도주의와 제4 인터내셔널”을 썼을 때에는, 대공황과 1933년 히틀러의 권력으로의 상승에 직면한 스탈린주의화된 코민테른의 파산의 결과로부터 비롯된 노동자 운동 내부에서의 급진화가 사회민주당들 내부에서 의미 있는 정도의 좌익-중도주의 경향들이 생겨나게 했다. 반대로, 현재의 정치적 스펙트럼에는 고전적인 중도주의자, 즉 개량주의로부터 좌익으로 분리하거나 혁명주의로부터 개량주의를 향하여 우익으로 분리하는 정치적인 이동 중에 있는 조직들이 거의 없다. 오늘날 우리의 좌익에서의 적대자들은 압도적으로 확증된 개량주의자들, 국제주의적 혁명적 노동자 운동의 반대자들이다.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소부르주아지 자유주의자들인 오늘날의 무정부주의자들의 정치적 특징은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의회주의적, 그리고 계급 협조적 배신들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열정적인 반(反)공산주의이다. 오늘날 노동자 운동에는, 러시아 혁명의 시기에서와 같은, 진정하게 반(反)의회주의적이고 혁명적인 생디칼리스트 경향과 비슷한 어떠한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볼셰비키 당이 10월 혁명에 의해 입증된 트로츠키의 영구혁명 이론의 정당함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것과"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를 분명하게 거부하지 못한 것이 이후 볼셰비키의 ‘고참 수호자’(예를 들면, 스탈린)인 양 했던 세력들이 트로츠키 …을[를] 공격하기 위한 도관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일정 정도 오해를 일으키며 비역사적인 것이라는 것을 지적한다(10번째 항목). 우선, 혁명이 트로츠키의 영구혁명의 이론과 1917년 레닌의 “4월 테제들”에서 그가 제출했던 동일한 전망에 따랐었다는 것은 레닌 지도부 시대 동안에 볼셰비키 당내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었다. 게다가, 혁명가들이 단순히 올바른 이론을 성문화하는 것을 통하여 이후 반동기에 수정주의를 위한 “도관”을 막아버릴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이상주의적인 것이다. 트로츠키가 이후에 왜곡의 스탈린 유파에서 설명했듯이, 1924년에 “트로츠키주의”(즉, 10월의 국제주의적 원칙들)에 대한 공격을 시작함에 있어서,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고참 사수대”는 트로츠키나 레닌이 1917년에 쓰거나 했던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구속되지 않았다. 트로츠키는 나중에 테르미도르 반동은 “사상과 논쟁이 아니라 그 자신의 사회적 비중으로 반대파, 당, 그리고 레닌에 승리했다. 관료집단이라는 묵직한 엉덩이가 혁명의 머리보다 더 무거웠다”고 지적했다(배반당한 혁명 [1936년]).

오늘날 변화하는 기회주의적 기호들을 따라가기 위하여 모순적인 강령적 입장들과 심지어 근거도 없이 주장되는 원칙들을 두루두루 도는, 사이버공간이라는 가상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무수히 많은 아마추어적 애호가들과 정치적 깡패집단들이 함께하고 있는 과거의 스탈린주의자들과 기타 수정주의자들과는 달리, 진정한 맑스주의자들은 혁명적 연속성과 강령적 일관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이 ICL이 좌익 조직들 중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초기 출판물들을 가용한 제본판으로 만드는 이유이다. 우리는 우리가 언제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이전 입장들을 이후의 경험이나 새로운 연구를 통하여 정교하게 하거나 거부했는지를 똑바로, 그리고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노력한다. 이러한 접근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집단적 기억의 보호자들로서 실천하기 위한 우리의 책임에 있어서 중심적인 것이다.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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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 사회주의 혁명과 국제공산주의동맹(제4 인터내셔널주의자)

국제공산주의동맹(제4 인터내셔주의자)는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혁명들을 통해 노동계급이 승리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민주주의적-중앙집중주의 국제조직의 각국 지부들로서의 레닌주의 정당들의 건설이라는 임무에 전념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인 그리고 국제주의적인 경향이다.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정치권력 장악과 세계체제로서의 자본주의의 파괴를 통해, 착취의 제거와 세계경제의 생산력 발전과 민족-국가적 장벽 사이의 모순 해결을 위한 기초를 놓을 수 있다. 자본주의는 현대 산업경제의 창조라는 진보적인 역사적 역할을 다 한지 오래 되었다.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하여, 각국 자본가 계급들은 소련 붕괴 이후 격화되어 온 민족적인, 인종적인(ethnic and racial) 분열들을 활용할 수 밖에 없다. 점점 더 상호 적대적으로 되고 있는 제국주의 열강들과 경쟁 블록들은 과거의 식민지 세계와 여전히 식민지 노예적 멍에 아래 있는 민중들을 억압해야만 하고, 세계 민중들을 가난하게 해야 하며, 하락하는 이윤율을 지탱하기 위하여 세계 시장의 유지와 재분할을 위한 지속적인 전쟁을 벌여야만 하며, 어느 곳에서 발생하건 노동자들의 혁명적 투쟁을 분쇄하기 위하여 시도해야만 한다. 자신의 계급 지배를 계속하기 위한 발작적인 노력 속에서, 부르주아지는 인류를 핵 전쟁의 참상이나 전례가 없는 격렬한 독재적 억압으로 내 던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세계적 규모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인류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상상을 초월하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며, 계급들의 제거와 성(性)에 기반한 사회적 불평등의 근절과 인종, 민족 그리고 민족성[ethnicity]의 사회적 유의미성의 철폐를 위한 기초를 놓을 것이다. 처음으로 인류는 역사를 통제하게 될 것이고,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사회를 통제할 것이며, 이것은 인류의 잠재력의 무한한 해방과 문명의 기념비적인 전진으로 귀결될 것이다. 오직 이 이후로만,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으로서의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아이작 도이처가 그의 연설 "사회주의적 인간에 대하여"(1966)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사회주의가 인류의 모든 곤경들을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인류가 만들어낸 그리고 인류가 해결 할 수 있는 곤경들과 투쟁하고 있다. 나는 예를 들어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기아, 성행위, 그리고 죽음이라는 세 가지 기본적인 비극들에 관한 트로츠키의 언급을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주고자 한다. 기아는 맑스주의와 현대 노동운동이 맞서 투쟁해온 적이다 …. 그렇다, 성행위와 죽음이 사회주의적 인간을 여전히 쫓아다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우리가 이것들을 다루는 것보다 더 좋은 조건에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2. 프롤레타이라트 지도부의 위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성공이나 실패는 조직과 투쟁하는 대중의 조직과 의식성, 다시 말하면, 혁명적 지도부에 달려 있다. 혁명정당은 노동계급의 승리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무기이다.

지배계급은 자신의 지배하에 폭력 수단을 독점하며, 압도적인 정치와 관료기구, 엄청난 부와 커넥션들, 그리고 교육, 매스 미디어 그리고 모든 다른 자본주의 사회의 기구들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힘에 대항하여 노동자 국가는 오로지 자신의 임무들을 완전하게 인식하고 있는, 그것들을 수행하기 위하여 조직화된, 그리고 지배계급의 반혁명 폭력에 대항하여 스스로 쟁취한 성과들을 확고히 방어하고자 하는 프롤레타이아트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정치적 의식성의 획득을 통하여, 노동계급은 단지 즉자적 계급이기를 멈추고 국가권력의 장악과 사회의 재조직화라는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인식한 대자적 계급으로 된다. 이러한 의식성은 노동자들의 매일 매일의 계급 투쟁의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발생되지 않는다; 그것은 혁명정당에 의해 노동자들에게 전달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자신들의 실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노동자들에게 고무하면서, 계급투쟁의 역사적 교훈들에 대하여 교육하면서, 보다 심오한 투쟁으로 단련시키면서, 노동자들이 가지는 환상들을 깨뜨리면서, 노동자들의 혁명적 의지와 자기 확신을 강화하면서, 그리고 권력 장악에 장애가 되는 모든 세력들의 타도를 조직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충분한 정치적 세력으로 벼리어내는 것이 혁명정당의 임무이다. 의식성을 획득한 노동계급은 역사의 결정적 힘이다.

전위정당 건설의 임무와 불가피한 혁명적 위기들에 대비하여 당을 정치적으로 예각화하는 것의 필수불가결성은 제국주의 시대에 강조된다. 트로츠키는레닌 이후의 제3 인터내셔널(1928)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 시대의 혁명적 성격은 그 시대가 혁명의 성취 즉 주어진 모든 순간에서의 권력 장악을 허용하는 것에 있지는 않다. 그 시대의 혁명적 성격은 심오하고도 날카로운 유동성들과 갑작스럽고도 빈번한 즉각적인 혁명적 상황으로부터의 이행들에 있다.... 이것이 전술과 상반되는 혁명적 전략의 중요성이 도출되는 유일한 원천이다. 또한 이것으로부터 당과 당 지도력의 새로운 중요성이 도출된다…. [오늘날] 결정은 모든 새로운 날카로운 정치적 정세에서의 좌익으로의 변화에 의하여 혁명적 정당의 수중에 놓여진다. 만약 혁명정당이 결정적인 상황을 놓친다면, 상황은 반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러한 주변 여건들 하에서, 당의 지도부의 역할이 예외적인 중요성을 획득한다. 국제 혁명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2-3일의 효과에 대한 레닌의 말들은 제2 인터내셔널의 시대에는 거의 이해되지 못했다. 반대로 우리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말들이 10월 혁명을 제외하고는 항상 부정적인 측면에서 너무나도 자주 확증되어 왔을 뿐이다."

3. 우리는 러시아 혁명의 당이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통하여 노동인민들이 지배하는 사회를 수립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라는 맑스주의적 교의를 이론의 영역으로부터 꺼내어 그것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러시아 안에서 볼셰비키 당이 지도했던 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은 러시아만을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러시아 혁명은 전 세계적으로 자본의 지배에 맞서는 없어서는 안 될 노동자의 국제적 투쟁의 서막으로 여겨졌다. 만약 주요한 자본주의 열강들, 가장 즉각적으로 독일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확대되지 않는다면, 고립된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오랫동안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가운데, 레닌의 볼셰비키들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자본주의의 사슬을 끊었다.

기회들은 다양하였으나, 러시아 외부의 새로운 혁명적 정당들은 그 기회들을 따라가기에 너무도 신생, 즉 너무도 허약하고 정치적으로 미숙했다. 유럽, 특히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자신의 부르주아지 주인들이 그들의 질서를 재안정화하는 것을 돕고, 10월 혁명에 적대하면서 자신의 부르주아지 주인들에 합류하면서, 그들의 부르주아지 주인들을 위해 복무했다. 보다 덜 발전된 다른 국가들과 지역들에서는 민족주의가 볼셰비키주의에 대항하는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장애물이요 세력이었다.

제국주의자들의 포위라는 압박, 내전에서 입은 러시아 노동계급의 참상, 러시아 혁명의 장기간의 고립이 스탈린이 이끄는 관료층으로 하여금 1923-24년 정치적 반혁명 속에서 정치권력을 찬탈할 수 있도록 했고, 트로츠키는 이것을 "소비에트 테르미도르"라고 불렀다. 소비에트 퇴행화된 노동자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적 소유 양식에 의존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신들의 특권들을 빼앗기는 했지만,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그것들의 방어에는 무조건적으로 헌신하지 않았다. 크레믈린 관료집단의 자기 자신의 제한된 민족적 이해관계들을 표현하던 "일국에서 사회주의"라는 스탈린의 "이론"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세계 혁명의 기구로부터 세계 혁명에 대한 새로운 장애물로 변화시켰다.

스탈린의 "일국에서 사회주의"는 맑스주의의 근본적인 원칙들에 대한 거부였다. 공산당 선언(1848)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결론을 맺는다. 1848년 혁명들은 현대 시대의 시작을 의미했다.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 지배에 대한 위협으로 이미 인식되던 프롤레타리아트의 면전에서 반동과 제휴했다. 엥겔스는 자신의 "공산주의의 원리들"(1847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19번째 질문: 이 혁명이 하나의 국가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답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대규모 산업이 세계 시장을 창출함으로써 지구상의 모든 인민들, 특히 문명화된 인민들을 관련시켜왔기 때문에, 각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의존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문명화된 나라들에 있는 대규모 산업이 사회적 발전을 너무도 동일한 수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들 모든 나라들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의 두 가지의 결정적인 계급들이 되었으며, 그들 사이의 투쟁이 오늘날의 주요한 투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 혁명은 단지 일국적인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혁명이며, 따라서 그 범위에서 전세계적일 것입니다."

스탈린의 민족주의적 기회주의에 반대하여, 트로츠키의 좌익반대파는 볼셰비키 혁명에 생명을 주었던 진정한 맑스주의 강령에 기초했다. 좌익반대파는 배신당했지만 아직까지 타도되지는 않았던 러시아 혁명의 성과들을 보존하고 확장하기 위하여 투쟁했다. 러시아 혁명의 퇴행,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이중적 성격, 그리고 소비에트 사회의 폭발적인 모순들에 관한 그의 통렬한 분석(배반당한 혁명, 1936년)에서, 트로츠키는 "관료가 노동자 국가를 집어 삼켜버릴 것인가, 아니면 노동계급이 관료를 일소할 것인가?"라는 선택을 엄중하게 제기했다. 트로츠키의 예언적 경고는 쓰디 쓰게 부정적으로 그 올바름이 입증되었다.

"일국에서 사회주의"라는 반(反)국제주의적 교조는 초좌익적 모험들로부터 계급협조까지의 재앙적 갈지자 행보로 귀결되었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을 1925-27년 제2차 중국혁명과 1926년 영국의 총파업에서부터 사회민주당뿐만 아니라 공산당도 총 한방 쏘지 않고 히틀러가 권력을 잡도록 허용했던 독일에 이르기까지 해외의 혁명적 투쟁들의 "무덤을 파는 자"로 성격 규정했다. 독일에서의 배신에 뒤이은, 인민전선(이후 스페인 혁명에 대한 스탈린의 범죄적인 교살에서 가장 완전한 모습을 보였던) 건설이라는 명백하게 반(反)혁명적 노선에 대한 코민테른의 명문화라는 상황 속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제4 인터내셔널을 조직했으며, 제4 인터내셔널은 1938년에 창립되었다.

소련(나중에 다른 곳에서 스탈린주의적 모델에 입각하여 수립되었던 관료적으로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들)의 계획경제는 급속한 발전을 이루던 시기에는 자본주의적 무정부성에 대한 그 우월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세계 시장 전반에 대한 여전한 세계적 지배에 의해 계속되는 경제적 포위라는 무지막지한 압력은 혁명의 국제적 확장 없이는 견디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트로츠키는 배반당한 혁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레닌에 의해 정식화된 문제 – 누가 우세할 것인가? – 는 소련과 세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를 한편으로 하고, 국제 자본과 소련 내부의 적대 세력들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세력들 사이의 상호관계의 문제이다.... 군사적 개입은 하나의 위험이다. 자본주의 군대의 화물 열차들에 있는 값 싼 상품들의 개입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위험이 될 것이다."

제4 인터내셔널의 조직적 허약함, 프롤레타리아트 내부로 뻗은 깊은 뿌리의 부재, 그리고 이론적 무능력과 무방침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트로츠키의 제4 인터내셔널 강령의 연속성과의 정치적 결별에 큰 역할을 하였다. 유럽 전반에 걸쳐 파시스트와 스탈린주의 압제에 의해 트로츠키주의 중핵들이 이미 절멸되었던 것이 – 그리고 좌익반대파가 의미있는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베트남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대한 대량 학살과 중국에서의 투옥이 – 결정적인 순간 경험있는 중핵들의 운동을 파괴했다.

전쟁 이후 동유럽에서의 스탈린주의의 확장이 자신의 형식적인 “정통”으로 이것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트로츠키주의 운동에 대한 새로운 강령적 도전을 제기했다. 중국(1927년)과 독일(1933년)에서 스페인 내전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계속된 패배들과 배신들, 그리고 스탈린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들 이후, 소련의 존재는 백척간두에 서게 되었다. 스탈린이 2차 세계대전 직전 자신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들을 통해서 소비에트 군대의 목을 벤 후 스탈린이 처음에는 히틀러에 대한 신뢰 때문에, 그리고 나서는 "민주주의적" 동맹들에 대한 신뢰 때문에 더욱 소련에 대한 군사적 방어를 사보타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적군은 히틀러를 패배시켰다.

파시즘에 대한 적군의 승리가 관료적으로 퇴행화된 소련의 권위를 크게 강화시켰지만, 트로츠키는 이것을 예견하지 못했다. 서유럽 스탈린주의자들은 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전투적 노동자 대중 조직의 지도부에서 출현했다. 반면, 소련이 점령했던 동유럽에서는 스탈린주의자가 지배하는 소련을 모델로 하는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들을 만들어냈던 관료적으로 통제되는 사회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적 소유가 몰수되고, 집산화된 경제가 수립되었다.

부분적으로 베트남 전쟁과 미국을 괴롭히던 내부 격변, 그 중에서도 특히 흑인 해방 투쟁으로 인하여,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유럽(1968년의 프랑스, 1969년의 이탈리아, 1974-75년의 포르투갈)에서는 일련의 준혁명적, 그리고 혁명적 정세가 조성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2차 세계대전 직후 기간 이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위한 가장 좋은 기회들을 의미했다. 친 모스크바 공산당들은 어떻게든 이 지역에서 다시 한번 흔들렸던 부르주아지 질서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구 스탈린주의 정당들의 반혁명적 역할은 이후 소련 파괴에 헤아릴 수 없이 큰 공헌을 했다. 1970년대 중반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서의 부르주아지 질서의 재안정이 즉각적으로 소비에트 블럭에 대한 신냉전 공세로 이어졌다.

권력을 다투는 세력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부재 속에서 곧 소비에트 스탈린주의 관료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유화와 동유럽 전반에 자본주의 복구를 중개하는 것과 나란히 1991-92년 구 소련에서의 자본주의 반혁명을 향하여 홍수 조절문을 활짝 열었던 "시장 사회주의"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지도자가 없었던 프롤레타리아트는 저항하지 않았고, 이것은 노동자 국가의 파괴를 의미했다.

1979년 "이란 혁명"은 무슬림 세계의 역사에서 상승하는 정치적 이슬람의 시대를 열었으며, 이 사태의 진전은 소련의 반혁명적 파괴에 기여하였고, 또 그것에 의해 강력하게 강화되었다. 이란에서 호메이니의 권력 장악과 강화는 비록 더 협소하고 지역적 차원에서 이기는 하지만, 1933년 히틀러가 독일 프롤레타리아트를 분쇄했던 것과 비슷한 패배였다. 국제 스파르타시스트 경향의 "샤를 타도하라! 뮬라를 지지하지 말라!"라는 슬로건과 우리의 여성문제에 대한 집중("베일 반대!")은 뮬라 주도의 반동에 굴종했던 다른 모든 좌익들에 대하여 첨예하게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 권력의 보존은 원칙적으로 정치 의식과 노동계급의 조직에 달려있다. 스탈린에 의한 볼셰비키의 혁명적 세력에 대한 육체적인 일소 이후, 10월 혁명의 전통과 함께 하는 모든 연속성은 노동계급의 기억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말살되었다. 스탈린에 의해 대량으로 만들어진 러시아-민족주의적 선전으로 가득 차 있던 소비에트 대중의 의식 속에서, 2차 세계대전이 소비에트 역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으로서 10월 혁명을 대신했다. 결국, 스탈린과 그의 후계자들은 자신들의 민족주의적 전망을 소비에트 인민들에게 주입하는데 성공했다.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는 "혁명의 수출"이라는 불분명한 "트로츠키를 따르는 이단"이나 혹은 내용이 없는 것으로서 냉소적으로 조롱 받게 되었다.

원자화되고 어떠한 반(反)자본주의 지도부도 없는, 어떠한 철저하고도 시종일관한 사회주의적 계급의식도 없는, 그리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의 계급투쟁의 가능성에 회의적이던 소비에트 노동계급은 잠식해 들어오는 자본주의 반혁명에 맞서는 저항을 조직하지 않았다. 그리고, 트로츠키가 레닌 이후의 제3 인터내셔널에서 지적했듯이, "만약 군대가 전투도 없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적에게 굴복 한다면,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이 굴복이 '결정적인 전투'의 자리를 차지한다."

스파르타시스트 45-46호(1990-91년 겨울판)의 조세프 세이모어의 "동유럽에서 스탈린주의 지배의 붕괴에 관하여"와 알버트 세인트 존의 "맑스주의적 명확함과 앞으로의 전망을 위하여", 그리고 1993년 8월 스파르타시스트 팜플렛, 어떻게 소비에트 노동자 국가는 교살 당했는가와 같은 문서들 속에 스탈린주의의 최종적인 위기에 대한 분석이 있다. 세이모어의 문서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스탈린주의 관료세력에 맞서는 장기간의 투쟁 동안, 트로츠키는 자본주의가 소련에 복구될 수 있는 몇 가지 다른 길들에 대하여 고려하였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 정권이 점진적이고 유기적인 과정을 거쳐 이미 소련을 부르주아지 국가로 변형시켰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이비 좌익들을 논박하기 위하여 '개량주의의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거꾸로 된 베른슈타인주의)이라는 구절을 사용했다.... 프롤레타리아트 정치혁명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반혁명 또한 스탈린의 러시아에서는 내전을 수반할 것이라는 트로츠키의 관점은 예측이지 교조가 아니다. 그의 예측은 관료 기구의 보수적 분자들에 의한 저항이 아니라 노동계급에 의한 저항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것이 배반당한 혁명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방식이다.... 결정적인 요소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수 많은 변화하는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소비에트 노동계급의 의식이다."

세인트 존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무정부적인 부르주아지 경제와는 달리, 계획화된 사회주의 경제는 자동적으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건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트로츠키]는 '사회주의를 향한 진보는 사회주의를 갈망하는 혹은 사회주의를 갈망하도록 강제되는 국가권력과 분리될 수 없다'고 썼다["노동자 국가, 테르미도르, 그리고 보나파르티즘" 1935년]. 이렇게 해서 그는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트 전위의 개입이 없다면, 스탈린주의 정치 정권의 붕괴는 불가피하게 계획 경제의 청산과 사적 소유의 복귀로 귀결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러시아 문제"는 20세기의 규정적인 정치적 문제였으며 혁명가들에게는 시금석이었다. 지구 상의 다른 모든 경향이 제국주의의 반(反)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압력에 굴종했던 반면, 우리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우리의 자리를 고수하였고, 노동계급의 혁명적 성취들을 보존하고 확장하기 위하여 투쟁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소련에 대한 방어는 전세계에서 새로운 10월 혁명들을 위한 우리의 투쟁 속에 표현되었다.

소련의 반혁명적 파괴에 대한 책임은 폴란드 솔리다르노스크로부터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근본주의 도살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반동적 운동에 대한 지지를 포함하여, 소련에 반대하여 자기 자신들의 자본가 지배자들의 뒤에 줄을 섰던 온갖 종류의 개량주의자들과 중도주의자들에게도 역시 있다. 소비에트 반혁명의 전세계적인 처참한 결과들은 또한 스탈린주의 관료가 "국가 자본가"였다는 반(反)맑스주의 이론들을 이론적 수준에서 박살낸다. 이 이론에 따르면, 소비에트 반혁명은 한가지 형태의 자본주의로부터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로의 이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1991년 8월 보리스 옐친과 자본주의 복구주의자 세력들이 권력에 오른 것이 소련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사건이었지만, 10월 혁명의 최종적인 파멸은 이미 결정난 것은 아니었다. 스파르타시스트는 10만부가 넘는 우리의 1991년 8월 기사 "소비에트 노동자들: 옐친-부시 반혁명을 분쇄하라!"의 러시아어 판을 소련 전역에 배포했다. 그 기사에서 우리는 노동자들의 위력 동원들이 프롤레타리아트 정치혁명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젖히면서, 옐친의 바리케이드들에 있던 반혁명적 오합지졸들을 쓸어 버렸어야 했다고 썼다. 우리는 자본주의 복구를 분쇄하고 소비에트 프롤레타리아트를 정치권력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정치혁명을 호소했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나 자본주의의 물질적 특권의 영향력 하에 있던 자들만이 당시 소련을 서둘러서 단념했다. 수십 년 동안의 스탈린주의적인 잘못된 지배와 흉포한 억압으로 배신당하고 원자화되었던 노동계급에 의한 저항의 부재는 소비에트 노동자 국가의 파괴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우리의 소련 방어는 제국주의와 내부 반혁명에 맞서는 무조건적인 군사적 방어, 관료세력을 타도하고 소련을 레닌과 트로츠키의 길로 되돌리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 정치혁명이라는 소련에 대한 우리의 강령에 제한되지 않았다. 이것은 또한 베트남 혁명에 대한 우리의 무조건적인 군사적 방어에서도 역시 표현되었다.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 폴란드를 전복하기 위한 월스트리트와 바티칸으로부터 지원을 받던 솔리다르노스크의 공세에 대한 우리의 반대에서도 표현되었다. 우리의 "아프가니스탄의 적군을 환영하라 - 10월 혁명의 사회적 성과를 아프간 인민들에게로 확장하라!"는 주장에서도 표현되었다. 독일의 혁명적 재통일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개입에서도 표현되었다.

역사가 자신의 판결을 소리 높여 말한다. 구 소련에서 반혁명의 권력 장악은 전 세계 모든 노동인민들에게 지구의 정치 지형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전대미문의 패배이다. 더 이상 소비에트 군사력의 도전을 받지 않게 된 미국 제국주의는 페르시아 만에서 아이티에 이르기까지의 반식민지 인민들을 짓밟는 가운데 "한 개의 초강대국의 세상"을 선포했다. 더 이상은 세계 제국주의에서 경쟁 상대가 없는 경제 대국이 아니지만, 미국은 여전히 자신의 군사력이라는 흉악한 이점을 유지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종종 "도둑놈들의 소굴"(유엔의 전신인 국가연합에 대한 레닌의 묘사)인 유엔의 "인도주의"라는 무화과 잎사귀로 자신의 테러를 즐겨 위장한다. 그러나 반(反)소비에트라는 단결로 인해 더 이상 제약을 받지 않게 된 경쟁 제국주의자들, 특히 독일과 일본은 신속하게 세계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위한 그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있으며, 동시에 군사력을 도모하고 있다. 오늘날의 경쟁적인 지역 무역 블럭 사이의 분쟁들에서, 미래 전쟁들의 전망들이 첨예해지고 있다. 제국주의자들 사이의 증가하는 경쟁에 직면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주요한 적은 국내에 있다!"라고 거듭 주장한다.

1차 세계대전 이전 시대를 되돌아보면, 오늘날의 "냉전 이후의 세계"는 많은 닮은 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제기되는 새로운 제국주의자들 간의 분쟁이라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개량주의자들과 중도주의자들이 전쟁 시기에 자기 자신들의 지배자들을 지지했던 1914년 8월 4일의 사회민주주의 선배들의 영감에 따라서 행동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그들은 완전히 이런 영감에서 소련에서의 반혁명을 지지했다.

소련에서의 엄청난 빈곤화와 나란히, 형제 자매에 대한 "인종 청소"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반혁명의 추진력으로서 존재하지도 않는 자본을 대체한 동유럽과 구 소비에트 공화국들의 허약한 새로운 자본주의 국가들에 만연해 있다. 반혁명의 여파로 이 지역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민족적 적의가 다시 살아났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다시한번 혁명가들이 분쇄해야만 하는 주요한 방해물이 되었다.

서유럽에서는 부르주아지들이 필수적인 것들을 제공함으로써 "공산주의의 망령"을 물리칠 필요가 있음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면서, 사회보장 방책들이라는 안전망이 크게 감축되었다. "공산주의의 사망"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환경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첨예한 계급투쟁이 과학적 사회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이론으로서의 맑스주의의 부활을 위한 객관적 기초를 제공한다. 죽은 것으로 보여지는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그것의 패러디인 스탈린주의이다.

승리한 반혁명은 단지 구 소비에트와 동유럽 프롤레타리아트를 물질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유린했을 뿐만 아니라, 공산당들이 노동계급의 선진층의 신뢰를 누리던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모든 나라들에서는 이들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들을 이끌었고 이들 국가들의 파괴를 주도했던 스탈린주의 지배 관료세력들에 의해 조장되었던 "사회주의는 실패했다"는 거짓말에 프롤레트리아트가 속았다. 동독 스탈린주의자들의 도움을 받은 크레믈린은 제4 제국에 동독을 서둘러 넘기면서 동독에서의 반혁명을 초래했다. 고르바쵸프 하의 크레믈린 관료세력은 사회주의는 실패할 운명의 이상주의적 실험이었음을 선언하고, 자본주의 시장 체제의 우월성을 선포하면서 자신의 궁극적이고도 최종적인 배신을 자행했다. 소련 공산당의 붕괴는 자본주의의 복구에서 미국 제국주의의 공공연한 대리인으로서 행동했던 보리스 옐친이 이끌던 공공연한 반혁명적 깡패 집단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스탈린주의 지배 계층들과 서구의 그들의 동료들에게 서유럽과 다른 지역의 선진 프롤레타리아트 층의 사회주의적 열망들을 파괴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전체적인 세계 정치 정세는 주로 프롤레타리아트 지도부의 역사상 위기로 특징 지어진다"는 1938년 '이행의 강령'에서의 트로츠키의 주장은 현재의 프롤레타리아트 의식의 깊은 후퇴에 앞서 나온 것이다. 이 소비에트 붕괴 이후 시기의 현실은 트로츠키가 말 했던 것에 새로운 특징을 추가한다. 이 후퇴가 극복되고 노동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대자적 계급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동계급의 지도부로서의 국제 레닌주의-트로츠키주의 당을 재건설하는 것이다. 맑스주의가 다시 한번 프롤레타리아트의 신뢰를 획득해야만 한다.

중국에서는, 스탈린주의 지배 관료집단이 밀어 부치는 극도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 복구로 가는 직접적인 가교이다. "시장 개혁들"이라는 중국에서의 반혁명의 핵심은 자본주의 세력들, 특히 (1917년 10월 이후의 러시아 쪽의 해당되는 자들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파괴되었던 것처럼) 하나의 계급으로서 파괴되지 않고,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계속해서 기능하고 있는 중국 자본가들과 함께 착취의 파트너가 되려고 하고 있는 관료집단이다. 중국은 제국주의 착취의 섬들으로서 "특수 경제지구들"을 잘라 냈고, 되돌려 받은 홍콩의 자본주의 경제를 건드리지 않고 유지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군대와 관료집단은 일반적으로 대규모 기업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 중 일부가 새로운 자본주의 착취자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 관료집단은 현재 국가산업에 대한 전면적인 파괴를 원하며, 이러한 파괴는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의 계획 경제의 남은 부분들의 해체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전투적 노동계급의 저항을 분쇄하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다. 스탈린주의 지배 관료집단은 맹아적 정치혁명이었던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과 "글라스노스트"(소비에트 지도자였던 고르바쵸프의 정치적 "개방")없이 잔혹한 힘에 의존하려는 의지 모두를 보여주었다. 중국에게 있어서 선택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정치혁명 혹은 자본주의 반혁명이다. 1920년대 초 막 생겨나고 있던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었던 국제주의적 계급의식을 다시 도입하기 위한 혁명적 지도부가 결정적인 요소이다. 중국에서 노동자 정치혁명을 위한 전투는 국제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는 남아 있는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들(쿠바, 베트남, 그리고 북한)와 전투적인 젊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강력한 요소로 등장해 온 인도네시아, 남한,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필리핀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역시 거대한 충격을 줄 것이다.

4. 국제공산주의자동맹(제4 인터내셔널주의자)의 이론적, 역사적 뿌리들

트로츠키가 1937년 자신의 글 "스탈린주의와 볼셰비키주의"에서 서술하였듯이, "우리의 시대와 같은 반동적 시대들은 노동계급과 그 전위를 해체하고 약화시킬뿐만 아니라 운동의 전반적인 이데올로기적 수준을 낮추며 정치적 사고를 오래 전에 통과했던 과거의 단계들로 되돌려 버린다.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전위의 임무는 무엇보다도 뒤로 흐르는 흐름에 따라 스스로를 맡기는 것이 아니다. 전위는 물결을 거슬러 헤엄쳐야만 한다." 맑스주의가 스탈린주의로 폭넓게 오해 받고 있는 이 소련 붕괴 이후의 시대에는, 무정부주의에 대한 호감들로부터 반(反)유물론적 이상주의와 신비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되살아 난다. 칼 맑스는 "종교적 고통은 현실의 고통에 대한 표현이면서 동시에 현실의 고통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다. 종교는 억압당하는 자의 탄식, 비정한 세상의 마음이며, 영혼이 없는 조건들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의 환영적(幻影的)인 행복으로서의 종교의 철폐는 그들의 현실의 행복을 위한 요구이다. 그들의 조건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고 그들에게 호소하는 것은 환상을 요구하는 조건을 포기하라고 그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헤겔 법철학 비판", 1844년)

국제공산주의동맹은 스스로를 맑스주의의 역사적,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1840년대 영국 챠티스트 운동과 짜르 제국의 첫번째 노동자 정당이었던 폴란드 당 "프롤레타리아트"(1882-86년)가 전형적인 예가 되었던 국제 노동계급 운동의 혁명적 전통들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맑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룩셈부르크, 그리고 리프크네히트와 같은 혁명가들의 업적에 의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노동계급에 의해 성취된 아직까지의 유일한 혁명인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볼셰비키 당의 경험에 주목한다. 이 역사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가 무엇을 방어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를 조명한다.

우리는 특히 레닌과 트로츠키에 의해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발전되었고,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첫 4개 대회들의 결정에서, 그리고 1938년 “이행의 강령”과 "전쟁과 제4 인터내셔널"(1934년)과 같은 제4 인터내셔널의 다른 주요 문서들에 의해서 구현된 맑스주의의 국제 노동계급 전망을 전진시키고자 한다. 이들 자료들은 국제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의 필수불가결한 문서상의 명문화이며, 우리 조직의 혁명적 임무들에 근본적인 것들이다.

이 심화된 자본주의 쇠퇴의 시대에,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가권력 장악과 새로운 평등주의적 사회주의의 기초 위에서의 사회의 재건설을 목표로 하는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동시에 계몽주의의 이상들과 부르주아지 혁명의 성과들을 가장 단호하게 방어한다. 우리는 개인 무장의 자유를 위한, 모든 왕권적이고 귀족적인 특권의 철폐를 위한, 종교와 국가의 분리를 위한, 정치 강령으로서의 종교적 근본주의의 강요에 반대하는, 부르주아지 국가의 침해에 맞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방어하기 위한, 사형선고와 같은 야만적인 "징벌들"에 반대하는, 여성과 소수 민족들에 대한 법적 평등을 위한 것들과 같은 부르주아지-민주주의적 자유를 위한 비타협적 투사들이다.

우리는 또한 제임스 번햄의 팜플렛 "인민전선 - 새로운 배신"(1937년)에서 서술되었던 것과 같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리를 비타협적으로 방어한다. "제대로 말해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는 권리들 중에서 세번째 그룹이 이런 저런 정도로 존재하는데 이것은 '민주적 권리'가 전혀 아닌, 이것 보다는 프롤레타리아트적 권리이다. 이 권리들은 피켓라인을 조직할 권리, 파업의 권리, 자신들을 조직할 권리와 같은 것들이다. 모든 경우들에 있어서, 이들 권리들의 역사적 기원은 부르주아지 계급과 부르주아지 국가에 반대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립적 투쟁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또한 코민테른 6차 대회에서 트로츠키주의로 획득되었으며, 처음에는 공산당 안에서 트로츠키주의 그룹을 구체화하고, 트로츠키주의 그룹을 노동계급 투쟁 속에 심어 넣기 위하여 투쟁했던 초기 미국 공산당의 지도자였던 제임스 캐넌에 대한 영감을 추구한다. 캐넌은 사회주의 노동자 당(SWP)의 주요 창립자였다. 그의 프롤레타리아트 당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 (초기 공산당의 끊임없는 분파주의를 거부하고,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자들 등에게 만연해있던 파벌적 음모들을 반대하면서) 레닌주의적 집단적 당 지도부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 그리고 1939-40년 러시아 문제를 둘러싸고 트로츠키주의로부터 변절했던 SWP의 소부르주아지 반대파(샤흐트만과 번햄)에 대한 투쟁 - 이것이 국제공산주의동맹이 고수하는 혁명적 유산이다.

하지만, 캐넌은 부분적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의 국가라는 영역 안에서는 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트로츠키주의 운동에서 등장했던 파블로주의적 수정주의 경향에 반대하여 투쟁했다. 우리의 기본적인 문서들에서 (특히 스파르타시스트 21호, 1972년 가을판의 "파블로주의의 기원"을 보시오), 한편으로는 파블로에 반대했던 자들의 실책들에 대하여 날카롭게 비판적었이지만, 우리는 트로츠키주의의 생존을 위한 결정적인 투쟁에서 그들과 함께 했다. 파블로주의는 주로 혁명적 지도부의 필요성에 대한 포기와 스탈린주의적, 사회민주주의적, 그리고 소부르주아지 민족주의적 지도부들에 대한 수용으로 특징지어진다. 동유럽에서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들의 수립에 이어, 파블로는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들의 세기들"을 예상했고, 스탈린주의 정당들이 "혁명적 방침의 밑그림을 대략적으로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탈린주의의 확대를 설명하기에 준비가 부족했던 캐넌과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우선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예를 들면, 1955년까지 중국을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기) 청산주의적 결론들을 격퇴하려고 시도했다. 캐넌은 파블로의 사회를 변형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거부와 트로츠키주의 전위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거부에 맞서 투쟁했다. 그러나 이 투쟁은 결코 완전하게 국제적으로 수행되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트 중심성에 대한 거부가 파블로의 (그리고 더 후에는 어니스트 만델의) 모든 수정주의 속에서 행해졌던, 대부분이 대리실험 ("게릴라 노선", "새로운 대중적 전위"로서의 학생들과 같은)이었던 실험들의 배후에 있었다.

국제공산주의동맹의 기원은 SWP의 '혁명적 경향'으로서 출발했고, 스스로를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 연맹 문서인 '사회주의를 위한 세계전망(1961년)'과 '혁명적 경향'의 2개의 문서, '혁명적 전망을 지키기 위하여(1962년)'와 특히 이후 SWP의 1963년 대회에 제출되었던 '4 인터내셔널의 재탄생을 향하여(1963년)'에 우선적으로 기초했던 '스파르타시스트 동맹/미국'에 있다. 1966년 창립 대회에서, 스파르타시스트 동맹/미국은 이번의 '원칙들에 대한 국제 선언'의 모범으로 기여했던 '원칙들에 대한 선언'(스파르타시스트/미국 맑스주의자 불리틴 9호를 보시오)을 채택했다. 맑스주의 운동의 이론적 명확화와 노동자들에게 필수적인 조직적 무기를 재건하는 것에 기여함으로써, 국제공산주의동맹은 맑스주의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원칙들을 고수하며 이 원칙들을 노동계급 전위에게 가져갈 것이다.

"기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역적이고 일시적인 필요들에 기초하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임무들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의 본성에서 기회주의는 민족주의적이다…. 우리에게 국제적 단결은 장식용 외관이 아니라, 우리의 이론적 관점과 정책의 축 그 자체이다"(레온 트로츠키, "소련과 반대파에 대한 방어", 1929년). SWP로부터 관료적으로 축출 당했던 소수의 트로츠키주의 젊은이들로서의 시작부터, 스파르타시스트 동맹의 관점과 실천들은 제4 인터내셔널의 재탄생을 향한 것이었고, 미국 중심성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1974년에 '국제 트로츠키주의 경향 조직을 위한 선포'가 채택되면서, 공식적으로 국제 스파르타시스트 경향이 구성되었다. 이 문서는 SWP, 통합서기국, 그리고 게리 힐리의 국제위원회와 같은 우리의 사이비 트로츠키주의 경쟁자들의 연방적이고 비(非)볼셰비키적 실천들을 날카롭게 공격했다. 이들 조직 모두는 혁명적 레닌주의적 국제주의 실천을 회피하기 위하여, 노골적으로 비민주적이었던 미국의 Voorhis Act라는 종이 호랑이 뒤에 숨었다. 이와는 반대로 국제공산주의동맹의 전신인 iSt는 단도직입적으로 iSt는 국제적인 민주집중제의 원칙에 의해 운영될 것임을 선언했다.

1979년 첫번째 대의원들의 국제대회가 국제집행위원회를 선출했다. 그때 이후 ICL은 라틴 아메리카, 남아프리카로의 우리 경향의 국제적 확대와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한층 더 한 확대들 속에서 순탄한 성취들을 이루어왔다. 이런 국제적 성장이 미국이라는 오랫동안의 상대적으로 반동적 정치 환경 속에 있는 우리의 최대규모 지부에 대한 불구화 압력에 대한 귀중한 평형력이었다.

1989년 iSt는 국제공산주의동맹(제4 인터내셔널주의자)가 되었다.

스탈린주의는 맑스주의의 모든 기본적인 원칙과 용어에 대한 이해를 체계적으로 왜곡하는 한편으로 공산주의의 기치를 진흙탕 속으로 끌고 갔으며, 인류진보의 공산주의 사상과의 일체화의 전반적인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점에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활동들이 전 지구적으로 수 백만 명들 사이에서 억압에 대한 미숙한 주관적 증오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공산주의 지도부의 부재를 심히 느끼고 있으며, 레닌주의적 국제주의의 강령은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면서 제기될 수 있다.

일부 저임금 "제3 세계" 나라들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투자가 지금까지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지역들에 노동과 자본 사이의 주요한 대립들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집중을 창출해 왔다. 선진적인 서구 나라들을 넘어서는 우리 당의 더 큰 확대를 위한 우리의 노력 속에서, 우리는 우리 인터내셔널에 Kote Tsintsadze와 같은 볼셰비키의 용기를 불어 넣고자 노력한다.

"Kote Tsintsadze와 같은 투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짜르주의, 비합법성, 감옥, 추방, 멘셰비키에 맞서는 여러 해 동안의 투쟁들, 그리고 특히 3개의 혁명의 경험 등의 예외적 조건 모두가 필요했다.... 서구의 공산당들은 Tsintsadze와 같은 투사들을 아직까지 배출하지 못했다. 이것은 역사적인 이유들에 의하여 결정된, 지속적으로 그들을 괴롭히는 약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점은 약점이다. 서구 나라들의 좌익 반대파는 이 측면에서 예외가 아니며, 그들은 반드시 이것을 단단히 염두에 둬야만 한다."

-트로츠키, "Kote Tsintsadze의 새로 만들어진 무덤에서", 1931년 1월 7일

5. 사회주의 혁명의 국제적 성격

역사적 경험은 사회주의를 향한 길은 자본주의 국가의 파괴에서 절정에 이르는 이중권력의 창출과 노동자 국가의 승리,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 질서의 발전을 통해해서만 오직 열릴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구 질서의 경찰, 군대, 관료, 사법, 그리고 정치 기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도록 개혁될 수 없고, 분쇄되어야만 하며, 노동인민들의 위원회에 기초하고 노동자들의 무장력에 의해 지지를 받는 노동자 정부라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의하여 대체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국가는 권력에서 쫓겨난 지배계급이 권력으로 복귀하려는 반혁명적 시도들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것이며, 합리적인 노선들을 따라서 경제를 재조직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계급들의 경제적 기초가 줄어 들면서, 노동자 국가는 점점 더 순전히 행정적 기능을 맡게 될 것이며, 최종적으로 계급이 없는 공산주의의 도래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계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제국주의를 파괴하고, 노동의 사회주의적인 세계적 분할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국의 자본가 계급을 다른 국가의 자본가 계급에 맞서게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불균형과 위기들을 만들어내는 무정부적 방식으로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국제적인 성격은 부르주아지에 대한 잠재적으로 엄청난 우월성을 노동계급에게 부여한다. 이러한 우월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민족적 분열과 다른 분열들을 가로질러 계급을 단결시키고, 모든 국가의 노동자들의 상호 의존적인 투쟁들을 조율하기 위한 국제적 정당을 필요로 한다. 혁명이 하나의 나라에서 시작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떠한 부분적인 승리도 다른 나라들로의 혁명의 확산과 사회주의적 경제 조직의 최종적인 세계적 지배를 통해서만 보장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까지 그 강령과 목적들이 1938년 창립 당시와 마찬가지로 유효하게 남아 있는 사회주의 혁명의 세계 정당인 4 인터내셔널을 재건설하기 위해 투쟁한다.

레닌주의 정당은 단순히 단선적인 신규 당원에 대한 조직화를 통해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기회주의자들과의 강령에 기초한 분리들,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중도주의로부터 분리하는 혁명적 인자들과의 통합을 통해서 건설된다. 특히 통합들이 민족국가의 국경을 넘어 이루어질 때에는, 굳건한 근본적인 정치적 동의를 이루기 위한 철저한 시험 기간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다른 어떠한 것도 아니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새로운 10월 혁명들의 성취를 향한 것이 방침인 그룹들을 결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6. 모든 피억압 인민들을 지키기 위한 노동계급의 전위적 역할

노동계급의 전위적 역할, 특히 산업화된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결정적인 비중이 세계 사회주의라는 맑스주의 전망에서 중심적이다. 노동계급만이 억압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한 분명한 객관적인 이해관계라는 사회적 힘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부르주아지 질서의 유지에 어떠한 이해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은 노동계급의 거대한 힘은 그들의 생산적 역할, 그들의 숫자, 그리고 조직에 있다.

한 줌의 자본가들의 계속되는 지배는 오로지 계속해서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그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상황에 대하여 혼란스러워 하도록 하는 것을 통해서만 유지된다. 미국에서는, 지배계급이 첫째 종교와 출신 국적(ethnic)에 따른, 그리고 다음에는 인종(racial)에 따른 프롤레타리아트 내에서의 깊은 분할을 활용하는데 성공했다. 피부색과 인종에 따라서 결정되는 피억압 신분의 일부로서 흑인 노동자들은 두 배의 억압을 받으며, 특별한 형태의 투쟁을 필요로 한다(예를 들면, 흑인/노동자 투쟁 동맹과 같은 가교적 조직들). 노동계급은 그러한 분할들을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넘어 설 수 있지만, 이것은 쉽게 과거의 분열로 되돌아 갈 수 있다. 미국에서의 사회주의는 다인종의 혁명적 전위 지도부 하에서의 흑인과 백인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흑인 문제는 노예제도, 북부 산업 자본주의에 대한 남부 노예소유 지배의 내전에서의 패배, 그리고 근저에서 흑인 노동자들의 프롤레타리아트로의 경제적 통합에도 불구하고, 흑인에 대한 인종적 격리로 귀결되는 평등이라는 급진적 재건 약속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배신과 같은 미국의 특수한 역사에 의해 규정된다. 미국 자본주의에 있어서 핵심인 흑인에 대한 강제적인 격리는 흑인 대중들이 투쟁이 가능하다고 느겼을 때마다 흑인 대중들에 의해 저항을 받아왔다. 그래서 미국에서 우리의 강령은 혁명적 통합주의(흑인들의 평등주의적, 사회주의 미국으로의 완전한 통합)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흑인 해방"이라는 강령이다.

지구 상의 모든 지역들에 뻗쳐 있는 현대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는 계급 투쟁의 와중에, 그리고 경제적 필요라는 요구에 따라서 권리라고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경제적 후퇴의 시기에는 마음대로 처분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바닥에 있는 보다 값싼 노동의 새로운 근원인, 주로 세상의 보다 못 살고 덜 발전된 지역 출신의, 이민자들을 프롤레타리아트 속으로 가져온다. 그래서 현재의 자본주의는 많은 서로 다른 지역들의 노동자들을 통합하는 동시에, 노동자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계층을 만들어 낸다. 모든 곳에서 노동귀족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부추겨지는 자본가들은 종교적, 민족적, 그리고 출신 국가적 분할을 조장함으로써 계급의식과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연대를 중독시키려고 애쓴다. 그래서 배외주의와 인종주의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단결과 통합을 위한 투쟁은 프롤레타리아트 전위의 결정적인 임무이다.

오늘날 반(反)이주자적 편협성은 인종주의/우익정치들을 정의 내리는 것이며, 서유럽으로부터 남아프리카,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노동자 운동과 좌익에 대한 시금석이다. ICL은 추방들에 맞서 투쟁한다. 모든 이주자들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노동자/소수 민족을 파시스트들을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으로 조직하라! 노동자/소수 민족의 조직화된 투쟁! 노동자 정당방위대를 위하여! 자기 민족 중심주의자들의 폭력에 맞서는 다인종/다출신 국가 노동자들의 민병대들을 위하여!

파시스트 데마고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풍토병인 실업, 빈곤화, 그리고 불확실성을 활용하면서 성장한다. 오직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고 그것을 국제적으로 계획되고 집산화된 경제로 대체하는 전망을 통해서만 이주자들과 기타 피억압 소수 민족들에 대한 파시스트 테러와 국가의 공격들에 맞서 효과적으로 투쟁할 수 있다. 트로츠키가 대공황의 충격 속에서 나찌 당이 독일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데 있어서 실질적인 위협으로 등장했던 1930년에 썼듯이 "소비에트 유럽 합중국, 이것이 독일뿐만 아니라 모든 유럽에서의 완전한 경제적, 문화적 쇠퇴를 위협하는 유럽의 분열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해 주는 유일하게 올바른 슬로건이다"("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서의 전환과 독일 정세" 1930년 9월 26일).

맑스주의 지렛대를 활용할 최선의 지점을 발견하기 위하여 모든 나라에서 여성, 청년, 소수 민족들, 그리고 모든 부문의 피억압 인민들에 대한 억압을 반드시 분석하고 선언해야만 한다. 레닌이 무엇을 것인가?(1902년)에서 썼듯이, "…사회민주주의자의 이상은 노동조합 서기가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나타나건, 그것이 인민의 어떤 계층 혹은 계급에 영향을 미치 건 모든 폭압과 억압의 표출에 대응할 수 있으며, 이들 모든 표출들을 일반화하고 경찰 폭력과 자본주의 착취라는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고,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과 자신의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제기하기 위하여,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을 위한 투쟁의 세계사적 중요성을 모든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그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모든 사태를 활용할 수 있는 인민의 지도자이어야 한다."

국제공산주의동맹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여성 해방을 위해 투쟁한다. 자본주의 발전이 뒤늦은 나라들에서는, 여성에 대한 심각한 억압과 격하가 전(前)자본주의적 "전통"과 종교적 반계몽주의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이들 나라들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에 맞서는 투쟁은 혁명적 투쟁의 추진력이다.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가장 선진화된 자본주의 나라들의 여성의 상황은 자본주의 하에서의 자유와 사회적 진보의 한계들을 드러낸다. 혁명가들은 자유로운 합법적인 낙태와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같은 여성의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권리들을 위한 가장 철저한 투사들이다. 소련 붕괴로 인해 악화된 반동적 사회적 환경과 대중들에 대한 "복지국가"적 보호장치들을 되돌려 놓기 위한 현재 진행형의 조직화된 운동이 반(反)섹스, 반(反)여성, 반(反)동성애적 편협성에서 날카롭게 성장해 왔다. 우리는 동성애나 그 밖의 합의에 의한 성적인 행위, 매춘과 약물 사용 등을 범죄화하는 것을 포함하여 피해자들이 없는 범죄에 관한 모든 법들을 반대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사회적 불평등인 여성에 대한 억압은 사적 소유의 시작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계급으로 나뉘어진 사회의 폐지없이는 폐지될 수 없을 것이다. 다음 세대의 양육이라는 그 기능이 여성의 가사 노동과 함께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집합적인 기구들에 자리를 내주고 대체되어야만 하는 가족이 여성을 억압하는 근본적인 사회 기구이다. 우리는 스파르타시스트 동맹/미국의 잡지인 여성과 혁명의 초기 호들에서 서술되었던, 여성을 사회주의적 대의로 획득하기 위한 여성들 가운데에서의 조직화된 특별한 활동들에 대한 볼셰비키 활동들의 전통을 고수한다.

모든 부르주아지적 불의의 표출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한편으로, 우리는 개인의 억압에 대한 경험을 초월하는 의식성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부문주의에 반대하며,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후위로 모든 피억압 사회계층의 전위를 통합시키기 위하여 투쟁한다.

청년으로 향하는 길을 열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정당 건설에 있어서 핵심은 새로운 청년 세대를 트로츠키주의의 원칙들과 강령으로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다. 이것은 청년 노동자들을 신규 조직원으로 획득하기 위한 투쟁뿐만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의 활동도 포함한다. 소부르주아지 인텔리겐챠의 특히 불안정한 층인 학생들은 좌익 혹은 우익의 "급진적" 활동들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레닌 처럼 혁명정당은 계급을 탈각한 혁명적 지식인들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최선진층의 융합을 통해서 건설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우리는 노동계급 쪽으로 학생들을 획득하고자 노력한다. 청년은 자본주의 지배자들의 전쟁들과 기타 군사적 모험들을 위한 대포 밥이라는 특별한 역할에 복무한다. 부르주아지 군대와 징병제에 대한 우리의 반대는 평화주의자들 혹은 많은 나라들에서 노동계급 청년에게 부과되는 의무로부터의 소부르주아적 면제를 추구하는 자들의 반대와는 정반대이다. 우리는 공산주의 혁명의 강령과 목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병사들을 획득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우리의 계급과 함께 입대한다. 우리는 혁명적 정세에서 프롤레타리아트 승리의 열쇠가 징병군대를 계급을 따라서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우리의 청년에 대한 활동을 통하여 우리는 조직적으로는 혁명정당에 독립적이면서 정치적으로는 혁명정당에 종속되는 이행적 청년 조직들을 건설함으로써 혁명정당의 미래 중핵들을 충원하고 훈련하고자 노력한다.

7. 수정주의의 부르주아지적 기반

혁명적 의식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이지 않은 한, 그들의 의식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결정된다. 객관적으로 자본주의는 자본의 힘, 자신의 폭력 수단에 대한 독점, 그리고 모든 존재하는 사회 기구들에 대한 자신의 통제를 통해서 지배한다. 그러나 만약 가능하다면, 자본주의는 환상을 조장하고 자신의 잔혹한 본질을 감추면서, 피억압 인민들에 대한 부르주아지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통하여 대중들의 “동의”를 가지고 지배하기를 더 좋아한다. 민족주의, 애국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종교는 주로 노동계급의 특권화된 상층부류에 기초한 기생적 노동조합 관료들, 사민주의적 관료들, 그리고 스탈린주의 출신의 관료들인 소부르주아지 “노동자 장교들”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노동자들의 조직들로 침투한다. 이들이 혁명적 지도부들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다면, 이들 개량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조직들이 부르주아지 민주주의라는 상황 하에서 노동자들의 경제적 필요를 위한 투쟁에 무기력하게 되도록 허용하거나 혹은 심지어 이들 조직들이 승리한 파시즘에 의해 파괴되도록 허용할 것이다.

레닌은 그의 1916년 저작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노동 관료의 기회주의의 물질적 기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 없이 많은 산업 부문들 중의 하나에서, 수 없이 많은 나라들 중의 하나에서 자본가들에 의한 높은 독점 이윤들의 획득이 경제적으로 노동자들의 특정 부위들을 그리고 잠시 동안 그들의 꽤 많은 소수를 매수하여, 다른 모든 것들에 맞서 특정 산업이나 특정 국가의 부르주아지의 편으로 그들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세계 분할을 위한 제국주의 나라들 간의 적대의 심화가 이 충동을 강화시킨다. 그래서 제국주의와 기회주의의 결합이 만들어진다.... 이 측면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멘셰비키, 마르토프 처럼] 기회주의에 맞서는 투쟁과 뗄레야 뗄 수 없이 결합되지 않는다면,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은 가짜요 사기라는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자들이다."

맑스주의 운동 내부의 경향들의 퇴행과 투항은 제국주의 지배의 보존에 특히 결정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이었다. 부르주아지 사회의 압력에 대한 굴복은 명목상의 맑스주의 경향들을 수정주의, 즉 국가는 계급 지배의 도구라는 맑스주의의 핵심적인 결론을 제외하는 과정으로 반복적으로 밀어내 왔다.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멘셰비키주의, 스탈린주의, 그리고 그것의 모택동주의적 변종 이 모든 것들이 공공연하게 개량주의적 실천들로 넘어가는 가교를 만드는 그러한 과정의 예증들이다. 스탈린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 외에, 세계적으로 민족주의자들과 정치화된 종교세력이 노동계급 투쟁을 일탈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중도주의는 맑스주의와 개량주의 사이에, 혁명적 국제주의와 기회주의적 사회적 애국주의 사이에 무수히 많은 정치적 색조를 띠는 강령적으로 이질적이며 이론적으로 무정형한 노동자 운동 내의 경향이다. 트로츠키가 그의 1934년 저작, "중도주의와 제4 인터내셔널"에서 지적하였듯이,

"혁명적 맑스주의자에게 있어서, 개량주의에 대한 투쟁은 이제 중도주의에 대한 투쟁에 거의 완전하게 자리를 내준다.... 따라서 숨어있거나 위장을 하고 있는 기회주의자들과의 투쟁은 반드시 혁명적 필요조건들로부터 주요하게 실천적인 결론들의 영역으로 이행되어야만 한다."

첨예한 계급 투쟁의 정세에서, 부르주아지 계급 지배를 유지하는 매독과도 같은 사슬의 일부를 구성하는 위장하고 있는 중도주의자들은 혁명적 폭로로 인하여 더욱 위험스러워지고도 더욱 약해진다. 혁명적 트로츠키주의 전위가 우리의 중도주의 반대파가 입는 손실로부터 성장하거나, 혹은 그 반대일 것이다. 맑스주의와 중도주의 사이의 이 대결의 결과는 혁명의 성공이냐 실패냐에서 결정적인 요소이다.

급진적 민주주의적 이상주의에 기초한 반(反)맑스주의 이데올로기이며, 볼셰비키라는 혁명적 맑스주의에 의하여 20세기 초에 거의 소멸했었던 무정부주의의 부활을 만들어 낸 것은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의 호소력 없는 개량주의적 실천이다. 비슷하게, 노동조합주의자들 사이에서 반(反)정치적 생디칼리즘 분위기들의 부활은 모든 구 "사회주의적" 의회주의자들의 행위들에 대한 혐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경제 투쟁으로의 이러한 후퇴는 개량주의 배신자들에 대한 어떠한 진정한 도전도 없이 전투적 투쟁을 낭비해버리는 것을 허용할 뿐이다.

8.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

레온 트로츠키는 그의 1934년 저작 "전쟁과 제4 인터내셔널"에서 쇠퇴하는 자본주의에 의해 불가피하게 야기되는 전쟁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적 반대의 강령을 명문화했다. 트로츠키가 지적하였듯이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변형시키는 은 전쟁 동안 프롤레타리아트 정당의 모든 활동을 종속시켜야 하는 총체적인 전략적 임무이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제국주의 사이의 전쟁들에서, 그리고 2개의 상대적으로 비슷하게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다른 전쟁들에서, 우리의 기본적인 원칙은 혁명적 패배주의이다: 자본가들의 학살에 대한 비타협적인 반대와 자기 자신의 부르주아지의 패배가 차악이라는 을 인정하는 것. 빌헬름 리프크네히트가 말했듯이, 부르주아지의 군사주의를 위해서는 "단 한 명도, 단 일전도 거부한다"

식민지, 반식민지 혹은 종속적인 국가들에 대한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에서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는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 민족주의 세력들로부터 완전한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피억압 국가들을 돕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중국, 베트남, 북한, 그리고 쿠바에 있는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군사적 방어를 해야만 한다. 우리의 입장은 자본주의를 파괴했던 사회혁명들에 의해 수립된 집산화된 소유 관계들[국유화된 소유, 계획화된 경제, 외국무역과 은행에 대한 국가독점 등]에서 구현된 이들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적 성격으로부터 도출된다. 이들 국가들의 관료적 기형화에도 불구하고, 계급의 적에 맞서는 이들 국가들에 대한 우리의 방어는 무조건적인데, 즉 이 무조건적인 군사적 방어는 스탈린주의 관료집단들에 대한 앞 선 타도에 의존하지 않을 뿐더러 분쟁의 환경들이나 즉각적인 원인들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강력한 경향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 고유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화"라는 이데올로기들은 소련 붕괴 이후의 시기에는 경쟁하고 있는 민족국가들의 경쟁적인 이해관계들이 극복되어 왔다는 잘못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칼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 이론의 재탕이다. 레닌이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썼듯이:

"경제적, 정치적 조건들의 광대한 다양성, 다양한 나라들의 성장율에서의 극도의 불균형 등,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폭력적인 투쟁들이라는 현실을 카우츠키의 '평화로운' 초제국주의에 관한 별 것도 아닌 머저리 같은 우화와 비교하라.... 독일의 국제 철도 신디케이트, 혹은 국제 상업해운 트러스트에의 참여 속에서, 평화적으로 온 세상을 분할했던 미국과 기타 금융자본이 지금 결코 평화롭지 않은 방법에 의해 바뀌고 있는 새로운 세력 관계에 기초하여 세계를 재분할 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9. 민족 문제와 자결에 대한 모든 민족들의 권리

트로츠키가 "전쟁과 제4 인터내셔널"(1934년 6월 10일)에서 썼듯이:

"자신의 발전을 위하여 민족을 활용해 왔지만, 자본주의는 세상의 어떤 곳, 어떤 한 구석에서라도 민족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해왔다."

자결권은 모든 민족들에 적용된다. 피억압 민족들의 자결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 지도부에 의한 투쟁은 대중들에 대한 소부르주아지 민족주의 지도자들의 장악을 분쇄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이다. 국제공산주의동맹은 레닌의 논박(자결에 관한 민족들의 권리, 1914년 2월-5월)을 지지한다. 여기에서 레닌은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와 자본주의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투쟁은 모든 국가의 노동자들의 최상의 완전한 연대와 최상의 단결을 필요로 한다. 이것들은 모든 민족의 부르주아지의 민족주의적 정책에 대한 저항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착취에 맞서는 성공적인 투쟁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족주의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그리고 말하자면 여러 나라들의 부르주아지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패권을 위한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중립적일 것을 필요로 한다. 만약 어떤 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라도 자기 '자신의' 나라의 부르주아지의 특권들을 조금이라도 지지하게 된다면, 이것은 불가피하게 다른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 불신을 야기할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계급적 연대를 약화시키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킬 것이며, 이것이 부르주아지들에게는 기쁨일 것이다. 자결권이나 분리의 권리에 대한 부정은 필연적으로 실천에서 지배 민족의 특권들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라는 레닌의 주장을 지지한다.

하지만, 민족 자결에 대한 특수한 요구(민주주의적 요구)가 계급적 문제들이나 계급 투쟁의 일반적 필요에 반(反)할 때와 충돌할 때 우리는 그러한 요구의 실행에 반대한다. 레닌이 "자기결정에 관한 토론 총괄"(1916년 7월)에서 지적하였듯이, "자기 결정을 포함하는 몇 가지 민주주의의 요구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일반적인 민주주의적(현재는 일반적인 사회주의적) 세계 운동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개별적인 구체적인 사례들에서, 부분은 전체와 충돌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개별적인 것은 거부되어야만 한다” 레닌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다른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 맞서 이 점을 주장하면서 폴란드의 자결권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레닌은 "바로 지금 폴란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폴란드 독립의 슬로건을 제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자들로서 폴란드 인민들은 ‘Fracy’[사회배외주의자들] 처럼 제국주의 왕조들 중 하나의 비천한 노예 상태로 굴욕을 당하는 것 없이는 그것에 관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똑같은 영토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2개 혹은 그 이상의 인민들의 상호 침투에 대한 우리의 접근에서, ICL은 볼셰비키들의, 특히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2차 대회에서 우크라이나에 관한 바로 그 토론에서의 실천과 경험에 따른다. ICL은 이러한 입장을 중동, 사이프러스, 북아일랜드, 그리고 구 유고슬라비아와 관련하여 정교화했다. 국가권력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지배 민족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자본주의 하에서라는 그러한 상황들에서, 민족자결이라는 민주주의적 권리는 다른 민족의 인민들의 민족적 권리들을 해치지 않으면서 한 민족의 인민들에게 유리하게 성취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들 분쟁들은 자본주의적 틀거리 안에서는 공정하게 해결될 수 없다. 민주주의적 해결을 위한 전제조건은 그 지역의 모든 부르주아지를 일소하는 것이다.

10. 식민지 혁명, 영구혁명, 그리고 "게릴라적 길"

2차 대전 이후의 경험은 제국주의 시대에 부르주아지-민주주의 혁명은 농민의 지지를 받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의해서만 오직 완수될 수 있다고 하는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의 이론이 유효함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식민지와 반식민지 나라들은 오로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하에서만 진정한 민족 해방을 획득할 수 있다. 사회주의로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로 혁명을 확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10월 혁명 그 자체가 단계론자로서의 멘셰비키의 혁명에 대한 사상을 논박했다; 멘셰비키들은 부르주아지를 권력에 앉히기 위하여 자유주의 카데트 당과의 정치적 블럭을 제안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융합이라는 멘셰비키의 사상은 실제로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농민들을 자유주의자에 굴복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1905년에 멘셰비키들은 자신들의 '부르주아지' 혁명의 이론으로부터 모든 필요한 추론을 도출할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었다. 1917년에,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들을 비참한 최후까지 추구하다가 스스로의 목을 부러뜨렸다"(트로츠키, 러시아 혁명에 관한 3가지 개념들, 1942년 최초 출판).

러시아 부르주아지는 민주주의 혁명을 지도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점에서 레닌의 볼셰비키들은 트로츠키의 관점에 더욱 가까왔다. 볼셰비키들은 2개의 서로 다른 계급들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1개의 국가를 계획했던 흠이 있던 슬로건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 속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던 노동계급과 농민 사이의 동맹을 주장했다. 1917년, 2월 혁명에 뒤이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지지하는 레닌의 “4월 테제들” 노선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볼셰비키 당 내부에서의 격렬한 투쟁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볼셰비키 당이 10월 혁명에 의해 입증된 트로츠키의 영구혁명 이론의 정당함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것과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를 분명하게 거부하지 못한 것이 이후 볼셰비키의 "고참 수호자"(예를 들면, 스탈린)인 양 했던 세력들이 트로츠키, 영구혁명의 이론, 그리고 볼셰비키 혁명의 혁명적 국제주의적 전제들과 함축들을 공격하기 위한 도관이 되었다.

트로츠키는 1930년 3월 29일 자신의 영구혁명 독일어판에 대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국제주의의 경제적 정당함을 제공한다고 가장하면서, 스탈린은 실제로는 개별 민족국가의 사회주의의 정당함을 제출한다. 세계경제가 단순히 아주 동일한 형태의 민족적 부분들의 총합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특수성이 마치 얼굴에 있는 사마귀들 처럼 ‘단지 일반성에 대하여 보충적인’ 것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민족적 특수성들은 실제로는 세계적 과정의 기본적인 특징들의 고유한 조합을 의미한다."

영구혁명(1929년 11월 30일)에서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국주의 시대라는 조건들 하에서, 민족민주주의 혁명은 오로지 그 나라의 사회적, 정치적 관계들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인민 대중의 지도자로서 권력에 올려놓을 정도로 성숙해 있을 때에만 승리적인 귀결로 수행될 수 있다. 만약 이런 경우가 아직은 아니라면? 그렇다면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은 단지 노동 대중에 완전히 반(反)하는 매우 부분적인 결과들 만을 만들어 낼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농민을 통합하고 권력을 장악하기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은 후진적인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 국가는 이로 인해 민주주의 혁명을 그 결론으로까지 끌고 갈 수가 없다."

식민지 세계에서 반(反)자본주의 혁명들의 부분적 성격은 우리로 하여금 사회주의 혁명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사회세력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맑스주의-레닌주의 개념을 다시 한번 단언하도록 한다. ICL은 노동계급의 전위적 역할을 부정하고, 농민에 기초한 게릴라 전쟁으로 사회주의를 향한 길을 대체하는 멘셰비키주의와 스탈린주의적 개량주의에 뿌리를 둔 모택동주의 교조에 근본적으로 반대한다.

유고슬라비아와 중국 혁명들의 경로를 소급해서 조명했던 쿠바 혁명에 대한 국제공산주의동맹의 이해는 스탈린주의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우리, 국제공산주의동맹이 기여한 맑스주의에 대한 심화된 확장이었다(맑스주의자 불리틴 8호, "쿠바와 맑스주의 이론"를 보시오). 사회권력을 위한 독립적인 경쟁자로서의 노동계급의 부재, 민족 부르주아지의 탈출과 제국주의에 의한 적대적인 포위, 그리고 소련에 의해 던져지는 생명줄과 같은 예외적인 환경들 하에서의 소부르주아지 운동이 쿠바에서 오랫동안의 바티스타 독재를 타도했고, 마침내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들을 박살냈다. 그러나 카스트로주의 (혹은 다른 농민기반의 게릴라 운동들)은 노동계급을 정치권력에 세우지 못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우호적인 역사적 환경들 하에서, 소부르주아지 농민은 단지 관료적으로 기형화된 노동자 국가 즉, 소련에서 스탈린의 정치적 반혁명으로부터 생겼던 똑같은 질서의 국가, 라틴 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로 사회혁명을 확대시키기 위한 가능성들을 막았으며, 쿠바의 사회주의 방향으로의 더한 발전을 억압했던 반(反)노동계급 정권만을 수립할 수 있었다. 노동계급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주의적 발전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트로츠키주의 당이 지도하는 보충적인 정치혁명이 필요하다. 소비에트 퇴행화된 노동자 국가의 파괴와 그 결과로 인하여 제국주의의 포위에 맞서기 위한 가용한 생명선이 없어지면서, 소부르주아지 세력들이 지역의 자본주의 지배를 타도할 수 있을 제한된 역사적 기회가 막혔으며, 이 점은 영구혁명이라는 트로츠키주의적 전망을 강조한다.

11. 인민전선: 전술이 아니라 최악의 범죄

1936년의 스페인에서 1973년의 칠레에 이르기까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위하여 무르익었던 기회들이 피착취자들을 자신들의 착취자들에게 긴박시키고 파시스트와 보나파르티스트 독재들을 향한 길을 여는 인민전선이라는 기제를 통해서 일탈해 왔다. 레온 트로츠키는 "노동자들과 농민들을 의회적 환상으로 안심시킴으로써, 그들의 투쟁하려는 의지를 마비시킴으로써, 인민전선은 파시즘의 승리를 위하여 유리한 조건들을 만들어 낸다. 부르주아지와의 연합이라는 정책은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수년 동안의 새로운 고통과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수십 년 동안의 파시스트 테러로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새로운 혁명적 고양과 제4 인터내셔널의 임무들", 1936년 7월)라고 주장했다.

레닌과 트로츠키처럼, 국제공산주의동맹은 정부에서건 야당에서건 자본가 정당들과의 어떠한 연합("인민전선들")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며, 인민전선에 있는 노동자 정당들에 대한 투표에 반대한다. 개량주의 노동자 정당들(레닌의 정의에 의하면, "부르주아지 노동자 정당들")에 의해 구성되는 의회 정부들은 자본가 지배를 관리하는 자본가 정부들이다(예를 들면, 영국의 다양한 노동당 정부들). 대중적 개량주의 노동자 당이 부르주아지 정당들로부터 독립적으로 그리고 이 당들에 반대하여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스스를 표현하는 경우, 혁명가들에게 이것은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을 지탱하는 줄로서의") 비판적 지지 전술을 적용하기에 적당할 수 있다.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선거에서의 비판적 지지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기반과 친자본가 지도부 사이의 모순을 격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복무한다. 하지만, (서구에서 자유주의자들이나 일시적인 유행을 추구하는 생태주의 "녹색당"이나 부르주아지 민족주의자들과 같은) 심지어 작은 비(非)프롤레타리아트 정치 형식들을 포함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이러한 모순을 억누르는 가운데 부르주아지 강령의 보증인으로서 활약한다.

1920년대 중국 공산당의 장개석의 국민당으로의 용해로부터 수십 년 동안의 남아프리카 “좌익”의 신(新)아파르트헤이트 자본주의를 위한 제국주의자들이 지원하는 앞잡이가 된 ANC에 대한 굴종에 이르기까지 식민지와 구식민지 나라들에서 계급 협조가 가장 자주 취하는 바로 그 형식이 "반제공동전선"이다.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반(反) 양키" 민족주의가 전투적 노동자들과 봉기에 나선 농민들이 부르주아지 "급진주의자들"에게 자신들의 희망을 걸도록 유도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트로츠키의 영구혁명의 강령은 해방을 위한 매체로 후진적이고 제국주의에 의존하는 자기 자신의 피억압 국가의 부르주아지에 의존하는 환상들에 확신을 심어주는 것에 대한 대안이다.

12. 혁명정당: 강령, 조직, 그리고 규율

"당이 없이는, 당과 별도로는, 당을 제쳐놓거나 당을 대신하는 것을 가지고서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은 승리할 수 없다"(레온 트로츠키, 10월의 교훈[1924년]). 우리는 정치의식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져가고, 노동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고 강화할 수 있는 주요한 공격력과 지도세력이 되고자 하는 기구인 혁명정당을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우리의 목적은 지도적인 중핵이 계급투쟁 속에서 훈련되고 검증되어야만 하는 혁명적 총 지휘부이다. 당은 자신의 강령과 혁명적 단호함에 기초하여 계급의 지도력을 획득하고자 투쟁한다. 당은 현재의 정세를 평가하기 위하여 전체 과거를 이해하고자 한다. 문제는 프롤레타리아트 세력이 가장 확신에 차있고 가장 잘 준비되어 있으며, 구질서의 세력들은 의기소침해져 있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순간인 혁명적 순간이 도래했을 때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에 강력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한 혁명적 당에서는 자신들의 해방을 쟁취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열망이 구체화된다. 당은 그들의 혁명적 의지를 상징하며, 그들의 승리의 도구가 될 것이다.

트로츠키는 이행의 강령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다음 시기(준혁명적 시기의 선동, 선전, 그리고 조직)의 전략적 임무는 객관적인 혁명적 조건들의 성숙과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전위의 미성숙(구 세대의 혼란과 실망, 젊은 세대의 경험 부족)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에 있다. 일상 투쟁의 과정에서 대중들이 현재의 요구들과 혁명이라는 사회주의 강령 사이의 가교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이 가교는 노동계급의 폭넓은 층들의 현재의 조건들과 현재의 의식으로부터 나와 하나의 최종적인 결론, 즉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 장악으로 향하는 이행의 요구들이라는 체계를 포함해야 한다."

전위정당은 당이 선진노동자들의 의식을 위한 투쟁에 쏟는 것과 똑같은 의식적 고려를 당 지도력의 문제에 쏟아야만 한다. 트로츠키는 "노동조합 문제에서 공산주의자 동맹의 우익 분자들의 실수들"(1931년 1월 4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기회주의적 실책들과 일탈들의 사회적 근원들과 정치적 원인들이 무엇이건, 그것들은 항상 이데올로기적으로 혁명정당, 다른 프롤레타리아트 조직들과 계급 전체에 대한 혁명정당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환원된다."

공동전선은 특히 불안정한 시기들에 공동의 요구를 위한 투쟁에서 폭넓은 대중을 동원하고, 계급 내에서 전위정당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주요한 전술이다. "따로 행진하고, 함께 파업하자"라는 정식은 공동의 정치적 경험이라는 상황에서 경쟁하는 의견들의 충돌을 허용하는 한편으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한 공동의 실천을 의미한다.

공동전선이라는 공산주의적 전술은 전위로 하여금 공동행동을 이유로 만약 다른 상황들이었다면 적대적이었을 다른 조직들에 접근하도록 해준다. 이것은 조직노선을 강화하고 공동행동을 배제하면서, 지도자들에 대항하는 "평조직원들"과의 단결을 요구하는 "제3기" 스탈린주의자들의 "아래로부터의 공동전선"과 대치된다. 공동전선은 완전한 "비판의 자유", 즉 참가자들이 자기 자신의 슬로건들과 선전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함을 필요로 한다.

"단결"을 이유로 한 기회주의자들에 프롤레타리아트 강령을 종속시키는 선전 블럭의 실행은 혁명적 목적으로부터의 후퇴의 전형적인 예이다. 공동전선을 최소의 공통분모적 강령에 기초하는 상시적이었으면 하는 "연합"으로 변형시키는 "전략적 공동전선"이라는 사상이 비슷한 목적에 복무한다. 이런 모든 획책들에 반대하기 때문에, 혁명정당은 정치적 명확성을 위한 투쟁과 개량주의 그리고 특히 중도주의 세력들에 대한 가차없는 폭로 없이는 건설될 수 없다.

국제공산주의동맹은 초기 코민테른의 국제적색구호의 미국 지부인 국제노동자방어[ILD]의 원칙들과 기록들에 기초한다. 우리는 노동계급과 피억압 인민들을 위한 전투적 투사들을 그들의 정치적 관점과 무관하게 방어하는 국제노동자방어의 비(非)분파주의적, 당파적인 계급투쟁 방어 활동의 유산을 전진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 부르주아지의 법 체계로부터 가능한 모든 민주주의적 권리들을 활용하는 한편으로, 대중들의 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부르주아지 법정이라는 "정의"에는 어떠한 믿음도 주지 않는 가운데, 우리는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대중 투쟁을 조직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노동자 연대의 전통을 되살리는데 있어서 최대의 걸림돌은 노동운동 내부에서의 폭력, 반대파들에 대한 중상모략, 그리고 "외관상의 표면단체"의 교묘한 농간이라는 스탈린주의 조직들과 사회민주주의 조직들의 증오스러운 실천들이다.

국제공산주의동맹의 조직적 원칙은 내부 민주주의와 직무에서의 규율 사이의 균형을 의미하는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주의이다. 하나의 전투 조직으로서, 혁명적 전위는 계급투쟁에서 언제든지 일체화된 결정적인 실천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모든 조직원들은 다수의 결정을 수행하기 위해 동원되어야만 한다. 권위는 전술적으로 조직의 강령을 해석하는 선출된 지도부에 집중되어야만 한다. 내부 민주주의는 전체로서의 계급에 가장 가까이 있는 당 대오들이 느끼는 필요들에 따른 당노선의 집단적 결정을 가능하게 해준다. 분파적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는 살아있는 운동에 필수적이다. 이 권리의 존재 그 자체가 보다 덜 소모적인 해결 방식으로 불일치들을 이끌도록 돕는다.

국제공산주의동맹(제4 인터내셔널주의자)의 규율은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와 모든 인류의 해방이라는 자신의 강령과 목적으로부터 나온다.

13. 우리는 역사를 바꾸기 위하여 개입할 것이다!

"맑스주의는 교조가 아니라 실천의 지도적 원리이다." 국제공산주의동맹(제4 인터내셔널주의자)은 사회주의적 미래를 위한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국제공산주의동맹은 세계 정세와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하고 있는 임무들을 일반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현재의 유일한 국제조직이다. 우리의 작은 숫자들과 우리 강령의 힘 사이의 불균형은 거대하다. 현재 ICL의 지부들은 투쟁하는 선전조직들이거나 이러한 형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의 즉각적 임무는 우리의 중도주의 반대자들의 관점들에 우리의 관점을 날카롭게 대치시켜 설명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의 강령 전체로 노동자와 청년의 최선진 층들을 획득함으로써 그들을 조직원으로 조직하면서, 중핵들을 교육하는 것과 중핵들을 형성하는 것이다. 레닌주의 국제주의의 강령에 입각한 혁명적 재편들은 우리 세력의 작음과 우리의 임무 사이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들이다.

레닌의 볼셰비키들 처럼, 우리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산업에서의 공산주의 세포들의 발전과 투쟁을 통하여 지식인과 프롤레타리아트 인자들을 융합하는 것이다. 선전을 위한 글쓰기를 통해서는, 첫번째 중핵들을 교육할 수는 있지만, 써클이나 학교의 교실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계급사회, 공장, 대중 조직들에 살고 있는, 자신의 경험들의 언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 지를 알고 있어야만 하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위를 조직할 수는 없다. 심지어 가장 잘 준비된 선전 중핵들 조차도, 만약 그들이 대중들의 일상 투쟁과의 접촉을 갖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노동조합들 속에서의 공산주의적 활동은 상층에서의 무원칙한 블럭들과 술수들이 아니라 하부를 획득해 내는 것으로 향해져야만 한다. 자본가 국가와의 관계에서 노동조합들의 완전하고도 무조건적인 독립을 위한 투쟁이 절대적으로 핵심적이다. 노동조합들이나 노동자 운동에서의 정치적 반대자들에 맞서 부르주아지 법정들을 이용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독립성의 원칙을 깨뜨리는 것이며, 노동운동의 힘에 대한 공격이다. 노동조합의 내부 일에 계급의 적이 개입하도록 초대하는 것은 국가를 계급들 사이에서 "중립적"인 것으로 그려내는 것을 통하여 부르주아지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조장하는 것이다. 경찰은 "제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자본가 국가의 고용된 총잡이들이다. 노동자 조직들에 그들이 있을 자리는 없다. 국제공산주의동맹은 "경찰을 노동조합들에서 쫓아내기 위하여" 투쟁한다. 국가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독립성이라는 원칙을 위한 우리의 투쟁은 1940년의 미완성 에세이인 "제국주의 쇠퇴의 시대의 노동조합들"에서 트로츠키가 어느 때 보다도 국가와 더 많이 뒤엉켜 성장한 개량주의 노동조합들로 지적했던 경향들에 의하여 강조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본가 착취자들에 맞서 노동계급의 가능한 가장 강력한 단결을 건설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따라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 내에서의 직능적 분할들에 반대하고 산별 노동합주의를 지지하며, 서로 다른 정치적 경향들 혹은 인종적 조직들에 기초하여 노동계급을 경쟁적인 노동조합들로 분리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와는 정반대로, 공산주의 전위의 임무는 레닌주의 정당을 위한 중핵을 조직하기 위하여 경쟁하는 정치적 경향들 사이의 차이들을 명확히 하고 날카롭게 해야 한다. 레닌 시대에는, 이들 서로 다른 정치적 임무들이 서로 다른 조직적 형식들에 반영되었다: 유일한 볼셰비키 정치 강령을 대변하던, 정당 조직들로 구성되었던 코민테른과, 노동조합들에서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한 투쟁을 대변하던 프로핀테른.

우리는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대륙의 진정한 공산주의 정당들로 건설되는, 그리고 계급투쟁에 대한 전면적인 개입을 통하여 검증받은 공산주의 제4 인터내셔널의 재창립이 힘들고, 빈번히 위험할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레닌과 트로츠키의 혁명적 강령을 고수하는 작은 세력들에게 있어서, 경험, 의지력, 그리고 대중들 사이에서의 권위를 가지고 성공적인 프롤레타리아트 혁명들을 지도하기 위한 정당들을 건설하는 것이 인류전체를 위하여 전진하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노동자들과 피억압 인민들 사이에서 이 강령이 영향을 미치도록 하고자 노력하지만, 비이성적인 제국주의 지배계급에 의한 핵 학살 기술의 보유가 그 가능성들을 감소시킨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없다.

우리는 레닌과 트로츠키와 같은 동지들의 가르침과 실천들을 따른다.

"단호하게 현실에 직면하는 것; 최소 저항의 노선을 추구하지 않는 것; 사물들을그것 본래의 이름들로 부르는 것; 그것이 아무리 쓰라릴지라도 대중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 걸림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큰 것들에서만큼이나 작은 것들에서도 진실될 것; 자신의 강령을 계급투쟁의 논리에 기초할 것; 실천의 시간이 도래했을 때 대담할 것- 이것들이 제4 인터내셔널의 규칙들이다."

-"자본주의의 죽음의 단말마와 제4 인터내셔널의 임무들"(1938년)

이것들이 노동계급을 지도하는 역사적 임무 속에서 세계 사회주의의 승리(!)로 진군하는 국제공산주의동맹(제4 인터내셔널주의자)의 규칙들이다.

1998년 2월